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 1853–1896년 · 뒤셀도르프 · 빈 · 바덴바덴
무명이던 스무 살
그때 브람스는 무명이었습니다. 스무 살이었습니다. 함부르크의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소년 시절 항구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쳐 돈을 벌었습니다.
소개장 한 장을 들고 로베르트 슈만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슈만 부부 앞에서 자기 곡을 연주했습니다. 몇 마디 치자 슈만이 그를 멈추게 하고 아내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같이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슈만은 곧바로 잡지에 글을 써서 이 청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글이었고, 이 사람이 시대가 기다리던 음악가라고 썼습니다. 십 년 넘게 평론을 쓰지 않던 사람이 다시 펜을 든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가 있었습니다. 열네 살 위였고, 아이가 여섯이었으며, 일곱째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2월 로베르트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지나가던 배가 건져냈습니다. 그는 스스로 요청해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다시 나오지 못했습니다.
브람스는 뒤셀도르프로 거처를 옮겨 슈만가의 살림을 도왔습니다. 아이들을 돌봤고, 클라라가 연주 여행을 떠나면 집을 지켰습니다.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클라라는 남편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자극이 된다고 막았습니다. 대신 브람스가 병원을 오갔습니다. 남편이 어떤 상태인지,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전한 사람이 그였습니다.
이 시기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부르는 호칭이 편지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56년 7월
로베르트 슈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클라라는 죽기 이틀 전에야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브람스가 함께 갔습니다.
이제 두 사람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브람스는 그해 가을 뒤셀도르프를 떠났습니다. 함부르크로 돌아갔습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의 편지에서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 뒤로 사십 년
두 사람은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브람스는 새 곡을 쓰면 출판 전에 클라라에게 먼저 보내 의견을 물었고, 클라라는 그의 곡을 연주회에서 계속 연주했습니다. 서로의 연주와 작곡에 대해 오래 의논했습니다.
브람스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1859년에 아가테 폰 지볼트라는 사람과 약혼한 일이 한 번 있었지만 그가 곧 물렀습니다. 그 뒤에도 가정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클라라도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노년에 이르러 두 사람은 서로 주고받은 편지의 상당 부분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클라라가 먼저 태우자고 했고 브람스가 자기 몫을 강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남기기로 한 것뿐입니다.
1896년 5월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흔여섯이었습니다.
브람스는 프랑크푸르트 근교에 있었습니다. 부고를 받고 장례에 가려다 기차를 잘못 탔고, 이틀을 헤맸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매장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얼마 전 그는 성경 구절에 붙인 노래 네 편을 썼습니다. 죽음에 대한 것들입니다. 클라라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쓴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는 그것을 발표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그 뒤 열한 달을 더 살았습니다. 1897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슈만이 병원에 있는 동안 뒤셀도르프에 머물며 그 집의 살림과 아이들을 도왔다.
- —슈만이 세상을 떠나 두 사람을 막을 것이 없어진 그해 가을, 오히려 그곳을 떠났다.
-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사십 년 동안 편지와 음악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 —노년에 두 사람은 주고받은 편지의 상당 부분을 없앴다.
두 사람은 끝까지 각자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고, 브람스는 열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가 이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 두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곡과, 없애지 않기로 한 편지들뿐입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1853년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찾아갔고, 로베르트 슈만이 그를 공개적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es Brahms)
- 확인됨1854년 슈만의 자살 시도와 입원 이후,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에 머물며 슈만가를 도왔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es Brahms)
- 확인됨브람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클라라와는 1896년까지 서신과 음악을 통한 교류가 이어졌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es Brahms, Encyclopædia Britannica — Clara Schumann)
- 확인됨두 사람은 만년에 주고받은 서신의 상당 부분을 폐기했습니다. 현재 남은 것은 그 일부입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lara Schumann)
- 해석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연애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성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es Brahms)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마음을 직접 밝힌 적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 남은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미상클라라가 그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대목의 편지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1856년 가을 브람스가 뒤셀도르프를 떠난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을 뿐입니다.
- 미상두 사람이 편지를 없애기로 한 것이 누구의 뜻이었는지, 무엇을 없앴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es Brahms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Clara Schumann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