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변동림 · 김향안
1916–2004 · 1936–2004년 · 경성 · 도쿄 · 파리 · 뉴욕
1936년, 넉 달
이화여전 영문과를 나온 스무 살 여자가 시인과 혼인했습니다. 변동림과 이상입니다. 집안이 반대했고, 그는 집을 나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산 것은 넉 달쯤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이상이 혼자 도쿄로 떠났습니다. 새로 시작해 보겠다는 것이었고, 변동림은 경성에 남았습니다.
도쿄에서 이상은 불령선인으로 몰려 붙들렸습니다. 몸이 상한 채 풀려났고 병이 깊어졌습니다. 변동림은 소식을 듣고 현해탄을 건넜습니다.
1937년 4월 이상은 도쿄의 병원에서 스물여섯에 죽었습니다. 변동림이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유해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 뒤에 살아야 했습니다
1944년 변동림은 화가 김환기와 혼인했습니다. 김환기에게는 이미 세 딸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김향안이라는 이름을 새로 썼습니다.
그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 뒤의 일이 훨씬 깁니다. 1955년 그는 마흔에 혼자 파리로 갔습니다. 남편이 그림을 걸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화랑을 돌았습니다.
이듬해 김환기가 파리로 왔습니다. 그다음에는 뉴욕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십사 년을 살았습니다. 김환기의 점화가 나온 것이 그 시기입니다.
혼자 남은 뒤
1974년 김환기가 뉴욕에서 죽었습니다. 김향안은 쉰여덟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혼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뉴욕에 남아 김환기의 작품을 정리했습니다. 환기재단을 세웠고, 1992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열었습니다. 미술에 관한 글도 계속 썼습니다. 그 일들을 한 것은 일흔이 넘어서였습니다.
김향안은 2004년 여든여덟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상과 산 넉 달, 김환기와 산 삼십 년, 그리고 혼자 산 삼십 년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넉 달로만 불립니다
지금도 그를 소개하는 글의 상당수가 이상의 아내라는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넉 달이 육십팔 년의 앞에 놓입니다.
김향안은 그 시절에 대해 말을 아꼈습니다. 이상을 팔아 살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가 남긴 글의 대부분은 그림과 김환기와 파리와 뉴욕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가 오래 산 자리에 대해 쓴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상과 혼인했다.
- —도쿄로 건너가 임종을 지키고 유해를 수습해 돌아왔다.
- —마흔에 혼자 파리로 건너가 남편의 작품이 걸릴 자리를 만들었다.
- —남편 사후 재단과 미술관을 세웠다.
이상은 1937년, 김환기는 197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향안은 2004년 뉴욕에서 여든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향안이 남긴 글의 대부분은 그림과 뒤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넉 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변동림은 1936년 이상과 혼인했고, 함께 산 기간은 몇 달에 그쳤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 확인됨이상은 1937년 4월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고 변동림이 유해를 수습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 확인됨1944년 화가 김환기와 혼인하며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 확인됨1955년 혼자 파리로 건너가 남편의 전시를 준비했고, 이후 두 사람은 뉴욕에서 활동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 확인됨김환기 사후 환기재단을 세우고 1992년 환기미술관을 열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변동림이 이상과의 시기를 어떻게 정리했는지는 본인이 자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 미상그가 그 시절에 대해 말을 아낀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환기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