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카미유 클로델

1864–1943 · 1884–1898년 · 파리

열아홉에 조각을 배우러

카미유 클로델은 열아홉에 파리로 와서 조각을 배웠습니다. 그를 가르치던 알프레드 부셰가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학생들을 오귀스트 로댕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게 스무 살에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곧 조수 이상이 되었습니다. 로댕의 큰 작업에서 손과 발을 도맡아 만들었습니다. 지금 로댕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조각들 여러 곳에 그의 손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클로델은 스물이었고 로댕은 마흔셋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댕에게는 이미 사람이 있었습니다

로즈 뵈레는 1860년대부터 로댕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있었습니다. 로댕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1886년 클로델은 약속을 문서로 요구했습니다. 다른 학생을 두지 말 것, 자신을 작가로 세상에 소개할 것, 그리고 정해진 기간 안에 자신과 혼인할 것. 그 문서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로댕은 그 문서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로즈 뵈레와의 관계는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은 받았는데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요구한 뒤에

관계는 이후 몇 해에 걸쳐 무너졌습니다. 1890년대를 지나며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클로델은 자기 작업실을 차렸습니다. 로댕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했고,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 「성숙한 나이」라는 조각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있는 조각입니다. 나이 든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가고 있고, 남자는 끌려가면서도 뒤를 돌아봅니다. 그 뒤에 젊은 여자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뻗고 있습니다. 손은 닿지 않습니다.

그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지 사람들은 알아보았습니다. 로댕 쪽에서 국가의 주문이 취소되도록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뒤의 삶

로댕은 1917년 로즈 뵈레와 혼인했습니다. 함께 산 지 오십삼 년 만이었습니다. 뵈레는 그로부터 보름 뒤에, 로댕은 그해 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클로델은 그보다 오래 살았지만 그 시간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자기 작품을 부수는 일이 잦아졌고, 191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가족의 요청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194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십 년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조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입원과 오랜 수용에는 가족 관계와 당시의 제도, 본인의 건강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어느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20세기 후반에 다시 조명되었습니다. 지금은 파리 인근 노장쉬르센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1886년 관계의 조건을 문서로 요구했다.
  • —요구가 지켜지지 않자 관계를 이어가지 않고 갈라섰다.
  • —자기 작업실을 차리고 독립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로댕은 1917년 로즈 뵈레와 혼인했고 두 사람 다 그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클로델은 1913년부터 1943년까지 정신병원에서 지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20세기 후반에 다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삶은 오랫동안 로댕과의 관계로만 설명되었습니다. 지금은 조각가로서의 작업 자체를 따로 보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카미유 클로델은 1884년 무렵부터 로댕의 작업실에서 일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mille Claudel)
  • 확인됨1886년 두 사람 사이에 관계의 조건을 담은 문서가 작성되었습니다.(Musée Camille Claudel (Nogent-sur-Seine))
  • 확인됨로댕은 1860년대부터 함께 지낸 로즈 뵈레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고, 1917년 그와 혼인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mille Claudel)
  • 확인됨클로델은 1913년 정신병원에 입원해 1943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mille Claudel)
  • 확인됨그의 작품은 20세기 후반에 다시 조명되었고, 노장쉬르센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습니다.(Musée Camille Claudel (Nogent-sur-Seine))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1886년의 문서를 두 사람이 각각 어떤 무게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미상관계가 끝난 정확한 시점과 계기는 자료마다 다르게 봅니다.
  • 미상입원과 오랜 수용에 각 요인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Camille Claudel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
  • 2차 · Musée Camille Claudel (Nogent-sur-Seine) · 작품과 생애 자료. 개별 문서 주소는 확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