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아라곤의 캐서린

1485–1536 · 1509–1536년 · 잉글랜드

잉글랜드, 1509년

스페인에서 온 스물세 살 왕녀가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아라곤의 캐서린입니다. 원래는 왕의 형과 혼인했다가 다섯 달 만에 남편을 잃고 칠 년을 잉글랜드에서 어정쩡하게 지낸 참이었습니다.

새 왕 헨리 8세는 열여덟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혼인은 처음에는 잘 굴러갔습니다. 캐서린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왕이 프랑스에 나가 있는 동안 섭정을 맡아 스코틀랜드의 침입을 막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캐서린은 계속 임신했습니다. 여섯 번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는 딸 메리 하나였습니다.

아들이 없다는 것

십 년 넘게 지나도록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는 얼마 전에야 오랜 내전을 끝낸 나라였고, 헨리에게 후계자는 나라의 문제였습니다. 캐서린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1527년 헨리는 이 혼인이 처음부터 무효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의 아내였던 사람과 혼인한 것이 성서에 어긋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때 캐서린은 마흔둘이었고 두 사람은 이미 십팔 년을 함께 산 뒤였습니다.

캐서린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529년 법정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헨리에게 말했습니다. 이십 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형과의 혼인에서는 아내였던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라 하나가 갈라졌습니다

교황이 무효를 인정하지 않자 헨리는 로마와 갈라섰습니다. 잉글랜드 교회가 로마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이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캐서린 한 사람의 혼인 문제가 나라의 종교를 바꾸었습니다.

1533년 무효가 선언되었습니다. 캐서린은 왕비가 아니라 형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그 호칭을 거부했습니다. 자기에게 오는 편지에 그 이름이 적혀 있으면 받지 않았습니다.

딸 메리와의 만남이 금지되었습니다. 캐서린은 죽을 때까지 딸을 보지 못했습니다.

킴볼턴, 1536년

캐서린은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 킴볼턴 성에서 지냈습니다.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1536년 1월 그곳에서 쉰에 죽었습니다.

죽기 전 그가 헨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 당신을 보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편지입니다. 진짜인지는 지금도 논쟁입니다.

캐서린이 낳은 딸 메리는 뒤에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지 않았던 그 아이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혼인 무효 주장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 —법정에서 직접 자기 입장을 밝혔다.
  • —왕비가 아닌 호칭이 적힌 문서를 받지 않았다.

혼인은 1533년 무효로 선언되었고 캐서린은 1536년 킴볼턴에서 쉰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 메리는 1553년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캐서린은 끝까지 자신을 왕비라고 했습니다. 그 주장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나라마다 다르게 씁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아라곤의 캐서린은 1509년 헨리 8세와 혼인해 1533년까지 왕비였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 확인됨여러 차례 임신했으나 살아남은 자녀는 딸 메리뿐이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 확인됨1527년부터 헨리 8세가 혼인 무효를 추진했고, 교황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잉글랜드 교회가 로마에서 분리되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 확인됨1533년 혼인이 무효로 선언되었고 캐서린은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 확인됨캐서린은 1536년 킴볼턴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딸 메리와는 만나지 못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캐서린이 헨리의 형과 실제 부부 관계였는지는 당시에도 지금도 확정되지 않습니다.
  • 미상죽기 전 헨리에게 보냈다는 마지막 편지의 진위는 논쟁 중입니다.
  • 미상캐서린이 이 과정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견뎠는지는 공식 기록 바깥의 자료가 적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Catherine of Aragon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