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서

클레멘타인 호지어

1904–1908년 · 런던 · 블레넘

한 무도회에서

클레멘타인 호지어와 윈스턴 처칠은 한 무도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소의 처칠답지 않게 말문이 막혀 두 사람은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흘렀습니다. 1908년, 두 사람은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둘은 대화를 나눴고, 처칠은 클레멘타인의 외모뿐 아니라 지성과 정치에 관한 생각에 강하게 끌렸습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이 관계를 마냥 편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클레멘타인은 이미 처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불안했습니다. 두 사람이 자꾸 만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챌까 봐 걱정했고, 처칠이 자신을 정식으로 선택할지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훗날 두 사람의 딸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클레멘타인은 이 시기에 이미 처칠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관계가 알려질까 봐 몹시 불안해했습니다. 처칠이 자신이 주최하는 정원 파티에 초대했을 때조차 그 이유로 참석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처칠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1908년 8월. 처칠은 클레멘타인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사촌에게 부탁해 그녀를 블레넘 궁전의 작은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둘이 장미 정원을 걷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혼한다.

둘은 다음 날 아침 함께 걷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는 없었습니다.

클레멘타인은 약속대로 내려왔습니다. 처칠은 없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안 왔습니다.

이유는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처칠이 늦잠을 잔 겁니다. 평소에도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로 유명했던 그는, 청혼하려고 마음먹은 바로 그날에도 늦었습니다.

클레멘타인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정말로 그냥 런던으로 돌아가버릴까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보다 못한 사람이 개입했습니다. 처칠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위층에 있는 처칠에게 정신 차리라는 취지의 급한 쪽지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 클레멘타인에게는 자신과 마차를 타자고 제안했습니다. 두 사람은 약 30분 동안 주변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처칠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초조하게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요.

그리고 이번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오후가 되어 두 사람은 마침내 함께 정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둘은 비를 피하기 위해 정원에 있던 작은 그리스식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처칠이 자신의 마음을 말했습니다. 결혼해달라고 했습니다. 클레멘타인은 받아들였습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 왜 안 내려오지 하며 그냥 집에 갈까 고민했던 사람은, 그날 오후 그의 약혼자가 되었습니다.

클레멘타인은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런던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말씀드릴 때까지 약혼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칠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건물에서 나와 저택 쪽으로 돌아가다가 가족과 손님들을 마주쳤고, 처칠은 참지 못했습니다. 기쁨에 겨워 사람들에게 달려가며 약혼 사실을 바로 말해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또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저택 안에 있으면서도요. 처칠이 먼저 쪽지를 보냈습니다.

“내 사랑, 잘 잤나요? … 아침을 먹은 뒤 장미 정원을 함께 걸으며 꽃을 꺾지 않을래요?”

— 처칠이 클레멘타인에게 보낸 쪽지, 1908년 8월 · The Library of Congress — 처칠·클레멘타인 서한

그리고 클레멘타인이 답했습니다.

“내 사랑, 아주 잘 잤어요. 네, 장미 정원에 함께 가고 싶어요. 언제나 당신의, 클레멘타인.”

— 클레멘타인의 답장, 1908년 8월 · The Library of Congress — 처칠·클레멘타인 서한

두 쪽지의 원본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둘은 한 달 뒤인 1908년 9월 12일 결혼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아침에 늦잠을 잔 남자의 이름은, 조금 뒤 세계가 알게 됩니다.

청혼하기로 한 날 늦잠을 자서 하마터면 모든 걸 어긋나게 할 뻔했던 그 남자는,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윈스턴 처칠입니다.

훗날 그는 자신의 결혼을 아주 그다운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나는 결혼했고,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

인물윈스턴 처칠· 1940년대· The Library of Congress

그는 무엇을 했나

  • —관계가 알려질까 걱정해 초대를 거절하기도 했다.
  • —약속 장소에 상대가 나타나지 않자 그냥 돌아갈까 고민했다.
  • —결국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그날 오후 청혼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1908년 9월 12일 결혼했습니다. 결혼생활은 처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56년간 이어졌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있으면서까지 편지를 주고받았고, 서로를 부르는 애칭도 있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1904년 첫 만남과 1908년 재회, 그리고 그해 9월 12일의 결혼.(The Library of Congress — 처칠·클레멘타인 서한)
  • 확인됨청혼 당일 아침의 엇갈림과 사촌의 개입은 기록으로 전해집니다.(International Churchill Society)
  • 확인됨약혼 다음 날 아침 주고받은 두 쪽지의 원본이 남아 있습니다.(The Library of Congress — 처칠·클레멘타인 서한)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클레멘타인이 그 아침에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실제로 얼마나 떠날 마음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 미상정원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내용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1차 · The Library of Congress — 처칠·클레멘타인 서한 · 화면의 인용은 한국어 번역입니다.
  • 2차 · International Churchill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