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엘리자베스 1세

1533–1603 · 1558–1588년 · 잉글랜드 궁정

런던탑, 1554년

로버트 더들리를 엘리자베스가 처음 안 것은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여덟 살 무렵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전합니다.

1554년, 두 사람은 같은 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언니 메리가 왕위에 오른 뒤 엘리자베스는 반역 혐의로 런던탑에 갇혔고, 더들리도 집안이 역모에 얽혀 그곳에 있었습니다. 둘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네 해 뒤 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스물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즉위하자마자 더들리를 궁정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혔습니다. 왕의 말을 관리하는 직책이었고, 늘 여왕의 곁에 있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결혼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습니다

궁정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라는 말이 계속 돌았습니다. 외국 대사들은 본국에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여왕은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더들리에게 이미 아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이미 롭사트라는 사람이었고 시골에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1560년 9월, 그 아내가 계단 아래에서 목이 부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집에 하인들이 없던 날이었습니다. 조사 끝에 사고로 결론이 났지만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 때문에 오히려 결혼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결혼하면 그 소문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고, 왕위 자체가 위태로워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왕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1562년 엘리자베스가 천연두에 걸려 죽음을 오갔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그는 더들리를 나라의 섭정으로 삼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그 사이에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회복한 뒤 그 지시는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십 년 가까이 엘리자베스는 여러 나라의 혼담을 받았고, 그때마다 오래 협상하다 결국 성사시키지 않았습니다. 혼담은 외교의 수단이었고, 그는 그것을 아주 잘 썼습니다.

더들리와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백작으로 올렸고, 여전히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었습니다.

더들리 쪽에서 보면 이십 년 동안 답이 오지 않은 셈입니다. 그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1578년, 그가 결혼했습니다

더들리는 레티스 놀리스와 비밀리에 혼인했습니다. 여왕의 사촌이었습니다. 여왕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여왕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한 것은 더들리가 아니었습니다. 혼담 때문에 와 있던 프랑스 쪽 사절이 알려주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격노했습니다. 더들리를 잠시 가두었고, 레티스는 궁정에서 쫓겨나 다시는 여왕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이십오 년 뒤 여왕이 죽을 때까지 그랬습니다.

그런데 더들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궁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왕은 그를 완전히 내치지 않았습니다. 1588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습니다. 그해 여름 스페인 함대가 왔을 때 육군을 지휘한 사람도 그였습니다.

그가 죽은 뒤 십오 년

더들리는 그해 9월에 죽었습니다. 죽기 엿새 전에 여왕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습니다. 몸이 어떤지 묻고 약이 잘 듣는지 묻는 짧은 편지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 편지를 상자에 넣어 침실에 두었습니다. 겉면에 자기 손으로 한 줄을 적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라는 뜻의 말이었습니다.

그 상자는 1603년 여왕이 죽은 뒤에 열렸습니다. 십오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이십 년 가까이 상대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면서도 관계를 확정하지 않았다.
  • —상대의 혼인을 알게 된 뒤 크게 화를 냈고, 상대의 아내를 궁정에서 내보냈다.
  • —상대 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곁으로 돌아오게 했다.
  • —그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죽을 때까지 침실에 보관했다.

더들리는 158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끝까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여왕이 죽은 뒤, 그의 마지막 편지가 여왕의 침실 상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겉면에는 여왕의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엘리자베스 1세는 즉위 직후 로버트 더들리를 최측근으로 삼았고, 두 사람의 혼인설이 오래 이어졌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Elizabeth I)
  • 확인됨1560년 더들리의 아내 에이미 롭사트가 사망했고, 사인을 둘러싼 소문이 두 사람의 혼인 가능성을 사실상 막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Robert Dudley, Earl of Leicester)
  • 확인됨1578년 더들리가 레티스 놀리스와 비밀리에 혼인했고,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여왕이 크게 진노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Robert Dudley, Earl of Leicester)
  • 확인됨더들리는 이후 궁정으로 복귀했고, 1588년 사망할 때까지 여왕의 측근으로 남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Robert Dudley, Earl of Leicester)
  • 해석엘리자베스가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계산, 개인적 선택 등 여러 해석이 있으며 하나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Elizabeth I)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엘리자베스가 더들리에게 실제로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본인의 말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더들리가 왜 여왕에게 알리지 않고 혼인했는지, 그의 설명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여왕이 그를 다시 곁에 둔 것이 용서였는지 정치적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Elizabeth I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Robert Dudley, Earl of Leicester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