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서

에마 웨지우드

1838–1839년 · 영국

결혼을 앞두고

결혼을 앞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마 웨지우드입니다. 상대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척 찰스였습니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젊은 자연학자였습니다.

사실 찰스는 청혼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외모에도 자신이 없었고, 에마가 받아줄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1838년 11월 11일 에마가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 그에게는 상당히 뜻밖의 행복이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친구에게 신이 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으로, 제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 찰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1838년 11월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그리고 에마가 자신 같은 사람을 받아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에마에게는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신앙이었습니다. 에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찰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미 종교에 여러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찰스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에마 역시 그 차이를 알고 그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얼핏 생각하면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청혼했고, 받아들였고, 이제 결혼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약혼한 뒤에 에마의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찰스와 함께 있을 때는 괜찮았습니다. 그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찰스가 떠나고 혼자 남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1838년 11월, 에마는 결국 편지를 씁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우울한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이 떠난 뒤에는, 우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너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 에마가 찰스에게 보낸 편지, 1838년 11월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여기서 에마가 말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종교였습니다. 그녀에게 이건 “남자친구랑 종교가 다르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삶과 죽음 이후까지 이어지는 문제였습니다. 자신은 믿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정말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이런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에마는 그를 바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에마는 자신의 걱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찰스에게 성경의 한 부분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부탁에 대한 의견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도 썼습니다.

“정직하고 양심적인 의심이 죄가 될 수는 없다고 내 이성은 말하고 있어요.”

— 에마가 찰스에게 보낸 편지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그리고 찰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기를 아프게 할까 봐 그의 진짜 생각을 감추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렵다고 했습니다. 에마가 원했던 것은 찰스를 자신의 생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진짜 생각을 숨기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찰스 역시 자신의 의심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둘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며칠 전

1839년 1월 26일, 찰스는 완전히 다른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지를 샀습니다. 이것이 내가 전할 가장 중요한 소식입니다.”

— 찰스가 에마에게 보낸 편지, 1839년 1월 26일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결혼을 앞두고 심한 두통까지 앓았던 그는, 두통이 영원히 낫지 않아 결혼도 못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고 농담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뒤 곧바로 집으로 갈지 말지를 두고 에마의 의견에 계속 마음이 바뀌고 있다면서, 자신이 앞으로 꽤 말 잘 듣는 남편이 될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썼습니다.

얼마 전까지 두 사람은 죽음 이후의 영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에는 결혼식 끝나고 바로 집에 갈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람 사는 건 그때도 비슷했습니다.

1839년 1월 29일,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그렇다고 에마의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에마는 찰스의 신앙 문제를 생각했고, 또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과 관련된 모든 것은 나와 관련된 일이에요.”

— 에마가 찰스에게 보낸 편지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그러면서 자신은 두 사람이 영원히 서로에게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불행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편지는 찰스에게도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에마가 종교 문제를 이야기한 편지를 오랫동안 간직했습니다.

두 사람의 종교적 차이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에마가 걱정했던 그 남자의 이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자신과 너무 달라질까 봐 에마가 걱정했던 자연학자는, 훗날 《종의 기원》을 쓰고 진화론으로 과학사의 방향을 바꾼 찰스 다윈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지만 1838년의 에마는 몰랐습니다. 그녀에게 찰스는 아직 세계적인 과학자가 아니라, 사랑하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달라질지도 모르는 결혼 상대였을 뿐입니다.

인물찰스 다윈 · 《종의 기원》· 1859년·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그는 무엇을 했나

  • —차이를 알면서도 청혼을 받아들였다.
  • —약혼 뒤 커진 걱정을 편지로 그대로 전했다.
  • —상대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대신, 숨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 —차이가 남은 상태로 결혼했다.

1839년 1월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종교적 차이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40년 넘게 부부로 살았고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찰스는 에마가 종교 문제를 이야기한 편지를 오랫동안 간직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1838년 11월 11일 청혼과 수락, 1839년 1월 29일 결혼.(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 확인됨에마가 종교적 차이에 대한 두려움을 적은 편지가 남아 있고, 찰스가 그 편지를 오래 간직했습니다.(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 확인됨두 사람은 40년 넘게 부부로 살았고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찰스가 에마의 편지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두 사람이 결혼생활 동안 이 차이를 실제로 어떻게 다뤘는지는 편지 몇 통 너머로는 알 수 없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1차 · Darwin Correspondence Project — 서한 · 케임브리지 대학. 화면의 인용은 한국어 번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