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 1823년 · 보헤미아 마리엔바트
유럽 전체가 아는 사람이 되어
그때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전체가 괴테를 알고 있었습니다. 일흔넷이었고, 아내는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였습니다. 그해 여름 그는 병에서 막 회복해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 마리엔바트로 요양을 왔습니다.
그곳에 울리케 폰 레베초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었습니다. 열아홉이었습니다. 괴테는 그 어머니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울리케가 어릴 때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 여름 두 사람은 자주 어울렸습니다. 함께 산책하고, 돌을 주우러 다니고, 저녁 자리에 나갔습니다. 괴테는 광물 수집을 좋아했고 울리케에게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주변에서는 노인이 젊은 사람을 귀여워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괴테는 청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대공을 보냈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섬기던 바이마르의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부탁해, 울리케의 어머니에게 뜻을 전하게 했습니다. 당대의 군주가 중매를 선 셈입니다.
괴테 쪽에서 제시할 조건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재산이 있었고 이름이 있었고, 바이마르로 오면 어머니와 자매까지 함께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답은 거절이었습니다. 명확한 거부라기보다 완곡하게 미루는 형태였다고 전합니다. 딸이 아직 어리니 생각해 보겠다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습니다.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괴테는 한 번 더 시도했지만 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9월 초 괴테는 마리엔바트를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차가 흔들리는 안에서 종이를 무릎에 놓고 썼습니다. 나중에 「마리엔바트 비가」라고 불리는 작품입니다.
그 시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씁니다. 신들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면서 그것 하나만은 주지 않았다는 취지의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그 시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습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았고, 좋은 종이에 손수 정서해 붉은 가죽으로 묶어 두었습니다. 보여줄 때는 사람을 골라 자기가 직접 낭독했습니다.
바이마르로 돌아온 뒤 그는 크게 앓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그 뒤 칠십육 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괴테는 구 년 뒤인 183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리케 폰 레베초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보헤미아의 집에서 오래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고, 1899년 아흔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괴테보다 육십칠 년을 더 산 셈입니다.
그는 이 일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년에 누군가 물었을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짧게 답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괴테와 주고받은 것들을 태웠다고 합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직접 말하는 대신 지위가 높은 사람을 통해 청혼의 뜻을 전했다.
- —거절당한 뒤 그 여름의 장소를 떠나 다시 찾지 않았다.
- —돌아오는 길에 쓴 시를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고 따로 간수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괴테는 1832년, 울리케 폰 레베초는 18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울리케 폰 레베초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이 일에 대해서는 만년의 짧은 언급만 전합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1823년 마리엔바트에서 괴테가 울리케 폰 레베초에게 청혼의 뜻을 전했고, 성사되지 않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확인됨청혼의 뜻은 바이마르 대공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확인됨마리엔바트를 떠나며 쓴 시가 「마리엔바트 비가」로 전합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확인됨울리케 폰 레베초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1899년에 사망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 Wolfgang von Goethe)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거절의 형태와 표현이 정확히 어떠했는지는 자료마다 다르게 전합니다.
- 미상울리케 본인과 그 가족이 이 청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자세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괴테가 이 관계를 어느 정도로 여겼는지는 시를 근거로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