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허난설헌

1563–1589 · 1577–1589년 · 조선 · 강릉과 한양

강릉의 집

강릉 초당의 허씨 집에서는 딸에게도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 집 둘째 딸 허초희가 여덟 살에 지었다는 글이 지금도 전합니다. 신선의 누각에 올리는 상량문이었습니다.

아버지 허엽은 대사간을 지낸 사람이었고, 오빠 허봉과 동생 허균 모두 글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허초희는 오빠의 친구였던 시인 이달에게서 시를 배웠습니다. 난설헌은 그가 스스로 지은 호입니다.

허난설헌은 열다섯 무렵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했습니다. 명문가였고, 조건으로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살던 곳은 딸의 재주를 아까워하는 집이었습니다.

혼인한 뒤

남편은 과거 공부에 매달렸고 집 밖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허난설헌이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집에서 자랑거리가 아니라 흠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친정에서 그는 글을 배우는 딸이었습니다. 시집에서는 글을 쓰는 며느리였습니다. 같은 일이 한쪽에서는 기른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참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허난설헌은 그 집에서 계속 썼습니다. 신선의 세계를 그린 시가 많습니다. 여기가 아닌 곳을 오래 그린 사람의 글입니다.

연달아 잃었습니다

딸이 죽었고, 이듬해 아들이 죽었습니다. 허난설헌은 두 아이를 나란히 묻고 「곡자」를 썼습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고 시작하는 시입니다.

뱃속의 아이도 잃었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가 객사했고, 그를 가장 아꼈던 오빠 허봉은 귀양에서 풀려난 뒤 떠돌다 죽었습니다.

1589년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기 전에 자기가 쓴 것을 모두 태우라고 일렀고, 그대로 태워졌습니다.

동생이 외우고 있었습니다

동생 허균이 누나의 시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곁에서 듣고 자란 것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친정에 있던 것과 자기 기억을 합쳐 허난설헌의 원고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1598년 허균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그 원고를 건넸습니다. 『난설헌집』은 조선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간행되어 널리 읽혔고, 뒤에 일본에서도 나왔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허난설헌의 글을 귀하게 여긴 곳은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태우라고 한 이유를 적어 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시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도 시 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 —두 아이를 잃은 일을 시로 남겼다.
  • —죽기 전 자기 원고를 태우라고 일렀다.

허난설헌은 1589년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 허균이 모은 원고가 1606년 무렵 명나라에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허난설헌이 자기 삶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남은 시로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산문은 전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허난설헌은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나 158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 확인됨열다섯 무렵 김성립과 혼인했으며, 시집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여러 기록이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 확인됨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곡자」를 지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 확인됨동생 허균이 모은 원고가 명나라 사신을 통해 전해져 중국에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 해석죽기 전 자신의 원고를 태우라 했다는 것은 허균의 기록에 근거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허난설헌이 왜 자기 글을 태우라고 했는지는 이유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 미상남편 김성립과의 사이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는 후대의 기록이 엇갈립니다.
  • 미상지금 전하는 시 가운데 어디까지가 본인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난설헌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