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홍랑

16세기 · 1573–1583년 · 조선 · 경성(함경도) · 파주

함경도 경성, 1573년

함경도 경성에 관기 하나가 있었습니다. 홍랑입니다. 태어난 해도 본디 이름도 전하지 않습니다.

그해 북평사로 부임한 사람이 최경창이었습니다. 삼당시인으로 꼽히던 문인이었고 명문 해주 최씨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홍랑이 시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곁에 두었다고 전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것은 한 해 남짓이었습니다. 이듬해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고, 홍랑은 따라갈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묏버들 가려 꺾어

홍랑은 쌍성까지 배웅을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더 갈 수 없었습니다. 관기는 제 뜻으로 고을을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었고, 따라간 거기까지가 법이 허락한 끝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함관령에서 비를 만났을 때, 홍랑은 버들가지를 꺾어 시조 한 수와 함께 보냈습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하고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최경창은 그것을 한시로 옮겨 남겼습니다.

그 뒤 삼 년 동안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홍랑이 서울로 갈 방법도, 최경창이 함경도로 다시 올 일도 없었습니다.

이레를 걸었다

1576년 최경창이 병으로 자리에 누웠다는 소식이 함경도까지 갔습니다. 홍랑은 길을 나섰습니다. 이레 만에 서울에 닿았다고 전합니다.

그때 조선에는 함경도 사람이 함부로 서울에 오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명종비의 국상 중이었습니다. 홍랑은 그것을 알고도 갔습니다.

이 일이 사헌부에 알려졌습니다. 최경창은 그 일로 파직되었습니다. 홍랑은 함경도로 돌려보내졌습니다.

그 집안이 홍랑을 받아들일 방법은 없었습니다. 최경창이 그를 받아들였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사백 년

1583년 최경창은 상경하던 길에 마흔넷으로 죽었습니다. 홍랑은 그 무덤 곁에서 삼 년을 지켰다고 전합니다. 얼굴을 상하게 하고 지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임진왜란이 났을 때 홍랑은 최경창이 남긴 글들을 지고 피난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들이 지금 남아 있습니다.

홍랑이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해주 최씨 문중이 그를 최경창 부부의 무덤 아래에 묻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 파주에 그 무덤이 함께 있습니다. 살아서는 그 집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그 산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떠나는 상대를 국경 가까이까지 배웅하고 시조 한 수를 지어 보냈다.
  • —금령을 무릅쓰고 병든 상대를 보러 서울까지 갔다.
  • —상대가 죽은 뒤 무덤 곁을 지켰고 전란 중에 그의 글을 지고 피난했다.

최경창은 158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랑의 최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해주 최씨 문중이 그를 최경창 부부의 무덤 아래에 묻었습니다.

홍랑이 지킨 원고 덕분에 최경창의 시가 지금 전합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홍랑은 함경도 경성의 관기였고 1573년 북평사로 부임한 최경창을 만났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 확인됨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갈 때 홍랑이 지어 보낸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가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 확인됨1576년 홍랑이 병든 최경창을 보러 상경했고, 이 일이 문제가 되어 최경창은 파직되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 확인됨해주 최씨 문중이 홍랑을 최경창 부부의 무덤 아래에 묻고 제사를 지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 해석홍랑이 전란 중 최경창의 원고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문중에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홍랑의 생몰년과 본디 이름은 전하지 않습니다.
  • 미상무덤 곁에서 삼 년을 지켰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언이며 당대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 미상최경창 집안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당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경창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