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존 키츠
1795–1821 · 1818–1821년 · 런던 햄스테드 · 로마
동생을 잃은 해
그해 키츠는 동생 톰을 잃었습니다. 스물셋이었습니다. 결핵이었습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는 동생 곁을 지켰습니다.
동생이 죽은 뒤 그는 친구 집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 옆집에 패니 브론이 살았습니다. 열여덟이었습니다.
키츠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습니다. 시집을 두 권 냈지만 팔리지 않았고, 평단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물려받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마저 묶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듬해 약혼했습니다. 다만 공개된 약혼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할 형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키츠는 이 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1820년 2월
그해 2월의 어느 밤 키츠는 피를 토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려고 병원에서 몇 해를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촛불에 그 색을 비춰 보고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친구에게 그는 그 색을 알아볼 수 있다고, 그것이 사형선고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결핵이었고 당시로서는 낫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이 관계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여름 키츠는 브론 가족의 집에서 지내며 요양했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냈습니다.
그 무렵 그가 패니에게 보낸 편지들은 격했습니다. 질투하고, 의심하고, 곧 사과했습니다. 자기가 죽은 뒤 그가 다른 사람과 살게 될 것을 견딜 수 없다고 쓴 대목도 있습니다.
로마로
그해 9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면 나아질지 모른다는 권유에 따라 키츠는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친구 조지프 세번이 동행했습니다. 패니는 배웅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배는 검역 때문에 나폴리 항구에 열흘을 묶여 있었습니다. 그 뒤 마차로 로마까지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걸을 수 없었습니다.
떠난 뒤 키츠는 패니에게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세번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패니가 보낸 편지도 뜯지 못했습니다. 읽으면 견딜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편지들을 베개 밑에 두었다고 합니다.
1821년 2월, 키츠는 로마의 스페인 광장 옆 방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다섯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자기 묘비에 이름을 적지 말고, 물 위에 이름이 쓰인 사람이 여기 눕는다고만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패니가 보낸 편지들은 뜯기지 않은 채 그와 함께 묻혔습니다.
백 년이 걸렸습니다
패니는 여러 해 동안 상복을 입었습니다. 키츠가 준 반지를 죽을 때까지 끼고 있었습니다. 십이 년쯤 지난 뒤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이 셋을 두었습니다.
그는 키츠의 편지를 평생 보관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들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그 편지를 두고 키츠를 비난했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나약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패니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편지를 팔았다고 여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키츠가 죽고 백 년쯤 지난 뒤에야 그 평가가 뒤집혔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결핵 진단을 받은 뒤에도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 —요양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 —떠난 뒤 상대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고, 온 편지도 뜯지 않았다.
키츠는 1821년 2월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뜯지 않은 편지들은 그와 함께 묻혔습니다.
패니 브론은 오래 상복을 입었고 키츠의 편지를 평생 보관했습니다. 그 편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공개되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키츠와 패니 브론은 1818년 햄스테드에서 만나 이듬해 약혼했으나 공개하지 않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n Keats)
- 확인됨1820년 2월 키츠는 각혈을 했고 결핵으로 진단받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n Keats)
- 확인됨1820년 9월 요양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고 1821년 2월 로마에서 사망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John Keats)
- 확인됨키츠가 패니에게 보낸 편지는 1870년대에 공개되었고, 당시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Keats House (City of London) — Keats and Fanny Brawne)
- 해석로마에서 키츠가 패니의 편지를 뜯지 못했다는 서술은 동행한 조지프 세번의 기록에 근거합니다.(Keats House (City of London) — Keats and Fanny Brawne)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패니 브론이 이 시기를 어떻게 겪었는지는 본인의 기록이 적어 알기 어렵습니다.
- 미상두 사람이 정확히 언제 어떤 형태로 약혼했는지는 자료마다 서술이 다릅니다.
- 미상키츠가 마지막 몇 달 동안 이 관계를 어떻게 정리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John Keats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
- 2차 · Keats House (City of London) — Keats and Fanny Brawne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