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김일엽

1896–1971 · 1920–1971년 · 경성 · 도쿄 · 수덕사

잡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평안도 목사의 딸로 태어난 스물네 살 여자가 잡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김일엽입니다. 제목은 『신여자』였고, 조선에서 여성이 만든 첫 여성지였습니다.

그는 여자도 자기 삶을 자기가 정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정조는 도덕이 아니라 취미라고 쓴 글이 크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혜석, 김명순과 함께 신여성으로 묶여 불렸습니다.

김일엽은 여러 사람과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일본인 유학생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는 다른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 일들이 하나씩 신문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세계가 그를 갈아 냈습니다

글은 공격을 불렀습니다. 그의 주장이 아니라 그의 사생활이 다뤄졌습니다. 같은 시기 나혜석과 김명순도 같은 일을 겪고 있었습니다.

김일엽은 계속 썼습니다. 그러면서 불교 강연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 글로 맞서는 일과 그 세계에서 나가는 일 사이에서 몇 해가 지나갔습니다.

1933년 그는 수덕사로 들어가 만공 선사에게 머리를 깎았습니다. 서른일곱이었습니다. 문단도 잡지도 관계도 거기서 그만두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출가한 뒤 김일엽은 이십오 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붓을 놓는 것이 수행의 조건이었다고 전합니다.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히던 여성 필자 하나가 그렇게 사라졌고, 그는 그것을 지켰습니다.

성인이 된 아들이 그를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김일엽은 자기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스님이라고 부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매몰차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것 말고는 그 자리를 지킬 방법이 없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일엽 본인은 이유를 길게 적지 않았습니다.

사십 년 뒤

1960년 김일엽은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냈습니다. 이십칠 년 만에 낸 책이었고, 크게 읽혔습니다. 젊은 날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함께 그 책을 샀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옛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자기와 지금의 자기가 다른 사람이라고만 했습니다.

김일엽은 1971년 수덕사에서 일흔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여성으로 산 십삼 년과 승려로 산 삼십팔 년이 한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잡지를 만들어 여성의 삶에 대해 공개적으로 썼다.
  • —서른일곱에 출가해 문단과 이전의 삶을 떠났다.
  • —출가한 뒤 이십오 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김일엽은 1971년 수덕사에서 일흔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0년에 낸 회상록은 널리 읽혔습니다.

김일엽은 젊은 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자기와 지금의 자기가 다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김일엽은 1920년 『신여자』를 창간했으며 이는 조선에서 여성이 만든 첫 여성지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 확인됨그의 글과 사생활은 당시 언론과 문단에서 반복해 공격받았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 확인됨1933년 수덕사에서 만공 선사에게 출가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 확인됨출가 뒤 오랫동안 집필을 하지 않다가 1960년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 확인됨김일엽은 1971년 수덕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출가를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는 본인이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 미상아들을 만났을 때의 일은 아들 쪽 기록에 주로 의존합니다.
  • 미상출가 전 관계들의 구체적인 사정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일엽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