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김영한
1916–1999 · 1936–1999년 · 함흥 · 서울
함흥, 1936년
함흥의 한 술자리에서 스무 살 기생과 스물네 살 교사가 나란히 앉게 되었습니다. 김영한이었고, 영생고등보통학교 영어 교사로 와 있던 시인 백석이었습니다. 김영한은 열여섯에 기적에 올라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백석은 그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백의 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두 사람은 그 뒤 삼 년 남짓을 함께 지냈습니다.
백석의 집안이 반대했습니다. 정주의 양반 집안이었고, 기생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백석에게는 다른 혼처가 계속 들어왔고 실제로 혼례를 치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김영한에게 돌아왔습니다.
같이 만주로 가자
1939년 무렵 백석이 김영한에게 만주로 가자고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살 자리가 없으니 떠나서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영한은 가지 않았습니다. 뒷날 그가 밝힌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 자기가 따라가면 백석의 앞길을 막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생 출신이 곁에 있는 한 그가 시인으로 살 수 없으리라고 보았습니다.
백석은 혼자 떠났습니다. 신징으로 갔고, 그 뒤로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라가 갈렸습니다. 백석은 북에 남았습니다.
서울에서 지낸 오십 년
김영한은 서울에서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열었습니다.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곳이 되었고, 그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백석의 시를 찾아 읽었습니다. 백석 연구자에게 기금을 내어 백석문학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담은 책도 두 권 냈습니다.
김영한은 백석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백석은 1996년 북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소식이 남쪽에 알려진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천억을 내놓으며 한 말
1980년대 말부터 김영한은 대원각을 절로 내놓겠다고 법정 스님에게 청했습니다. 스님이 여러 해 사양했고, 1995년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자리가 지금의 길상사입니다.
당시 대원각의 값은 천억 원대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아깝지 않으냐는 물음에 김영한이 한 대답이 널리 전합니다. 그 돈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영한은 1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골은 길상사 뜰에 뿌려졌습니다. 육십 년 전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그는 끝까지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함께 만주로 가자는 청을 거절하고 조선에 남았다.
- —서울에서 자기 사업을 일으켜 오십 년을 살았다.
- —말년에 전 재산을 절에 내놓았다.
백석은 1996년 북에서, 김영한은 1999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1939년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김영한은 자기 이야기를 두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잘한 일이라고 적은 대목은 없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김영한은 1916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떠났고, 1936년 함흥에서 백석을 만났습니다.(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 확인됨백석은 1939년 만주로 떠났고, 두 사람은 그 뒤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 확인됨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서 대원각을 운영했고, 1995년 이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가 되었습니다.(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 확인됨김영한은 백석 연구에 기금을 내어 백석문학상이 제정되었습니다.(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 해석김영한이 만주행을 거절한 이유가 백석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본인의 회고에 따른 것입니다.(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백석이 김영한을 어떻게 여겼는지는 그가 남긴 글로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미상「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김영한을 향한 것이라는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 미상김영한이 그 결정을 뒤에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본인이 분명하게 적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길상사 — 길상화 김영한 보살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