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이옥봉
16세기 · 16세기 후반 · 조선 · 한양
조건이 붙은 시작
옥천 군수 이봉의 딸 가운데 서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옥봉입니다. 서녀는 정실의 자리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시를 지었고, 아버지도 그 재주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옥봉은 조원이라는 선비의 소실이 되었습니다. 뒤에 승지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들어가면서 조건이 하나 붙었습니다.
시를 짓지 말 것. 사대부 집안의 여자가, 그것도 소실이 글로 이름이 나는 것은 그 집에 좋을 것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옥봉은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한 번, 남을 위해
이웃에 사는 여인이 찾아와 울었습니다. 남편이 소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글을 몰랐고, 관에 낼 소지를 쓸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옥봉은 그 여인 대신 글을 써 주었습니다. 산문이 아니라 시로 썼습니다. 세숫대야를 거울 삼고 맹물로 머릿기름을 삼는 형편인데, 제가 직녀가 아닌 바에야 남편이 어찌 소를 끄는 견우이겠느냐는 뜻이었습니다.
견우를 소 끄는 사람으로 되받은 글이었습니다. 관에서 이 글을 보고 남편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가 누구의 것인지가 알려졌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조원은 이옥봉을 내보냈습니다.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옥봉이 쓴 글은 자기를 드러내려는 것도, 누구를 해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의 억울함을 푸는 데 쓰였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접기로 한 것을 다시 꺼냈다는 것입니다.
그 뒤 이옥봉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남은 서른한 편
이옥봉의 시 서른한 편이 지금 전합니다. 조원 집안의 문집인 『가림세고』의 부록에 붙어 있습니다. 내보낸 집의 책 뒤에 붙어서 살아남았습니다.
조원의 아들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 관리가 『이옥봉시집』을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바닷가에 떠밀려 온 시신에 종이가 겹겹이 감겨 있었고 거기 적힌 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확인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옥봉이 접기로 한 그것이 그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시를 짓지 않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소실이 되었다.
- —여러 해 그 약속을 지켰다.
- —남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그 약속을 한 번 어겼다.
조원에게서 내쳐진 뒤 이옥봉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시 서른한 편이 『가림세고』 부록으로 전합니다.
이옥봉이 그 결정을 뒤에 어떻게 보았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이옥봉은 옥천 군수 이봉의 서녀이며 조원의 소실이 되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옥봉)
- 확인됨시를 짓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옥봉)
- 확인됨이웃의 억울한 일을 위해 시를 지어 주었고 그로 인해 조원에게 내쳐졌다고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옥봉)
- 확인됨이옥봉의 시 서른한 편이 조원 집안의 문집 『가림세고』 부록에 실려 전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옥봉)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이옥봉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미상내쳐진 뒤의 행적과 최후는 기록이 없습니다.
- 미상중국에서 시집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전하는 것이며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옥봉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