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1807–1882 · 1836–1843년 · 스위스 · 보스턴

아내를 막 잃고 떠난 여행

그때 롱펠로는 스물아홉이었고 아내를 막 잃은 참이었습니다. 유럽에 공부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아내가 유산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남아 여행을 이어가던 중, 스위스에서 보스턴에서 온 애플턴 집안을 만났습니다. 그 집 딸 패니는 열아홉이었습니다.

몇 주를 같은 일정으로 다녔습니다. 함께 걷고 책을 읽었습니다. 롱펠로는 그때 마음을 정했습니다.

거절

보스턴으로 돌아온 뒤 그는 마음을 밝혔습니다. 패니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아내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자기가 아직 어리다는 것, 그리고 그가 서두른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 정도가 전합니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두 사람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 사교 자리에서 마주쳤습니다. 패니는 예의는 지켰지만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가 한 실수

1839년 롱펠로는 소설을 한 편 냈습니다. 유럽을 떠도는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마음을 두었다가 거절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보스턴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 이야기인지 알아보았습니다. 패니도 알아보았고, 크게 불쾌해했습니다. 그는 사적인 일을 책으로 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관계는 더 멀어졌습니다. 이 년쯤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롱펠로는 그 사이 하버드에서 가르치고 시를 냈습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큰 집에 하숙인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인생찬가」가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1843년 5월

칠 년째 되던 해, 패니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승낙이었습니다.

롱펠로는 그 편지를 받고 걸어서 그 집으로 갔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보스턴 비컨힐까지, 한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입니다. 마차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패니의 마음을 바꿨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칠 년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물러나지 않은 것뿐이었습니다.

그 뒤 십팔 년

두 사람은 그해 결혼했습니다. 패니의 아버지가 롱펠로가 하숙하던 그 집을 사서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거기서 여섯 아이를 키웠습니다.

1861년 여름, 패니가 딸의 머리카락을 봉하려고 촛불을 쓰다가 옷에 불이 붙었습니다. 롱펠로가 끄려고 달려들었지만 늦었고, 그도 크게 다쳤습니다. 얼굴에 남은 흉터 때문에 그 뒤로 수염을 길렀습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십팔 년이 지난 1879년에야 시를 한 편 썼고, 그것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뒤 서랍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거절당한 뒤에도 같은 도시에 남아 사교 자리에 계속 나갔다.
  • —그 일을 소설로 써서 관계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 —칠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맺어지지 않았다.
  • —승낙 편지를 받고 마차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갔다.

두 사람은 1843년 결혼해 여섯 아이를 두었고, 1861년 패니가 화재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십팔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패니가 죽고 십팔 년 뒤에 쓴 시가 그의 사후 서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롱펠로는 1835년 유럽에서 첫 아내를 잃었고 이듬해 스위스에서 패니 애플턴을 만났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 확인됨그가 마음을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칠 년 동안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 확인됨1839년 발표한 소설이 두 사람의 일을 옮긴 것으로 읽혀 패니가 불쾌해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 확인됨1843년 5월 패니가 승낙의 편지를 보냈고 두 사람은 그해 결혼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 확인됨1861년 패니는 옷에 불이 붙어 사망했으며, 롱펠로도 이때 화상을 입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패니가 칠 년 만에 마음을 바꾼 이유는 기록에 없습니다.
  • 미상거절의 정확한 이유도 본인의 말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그 칠 년 동안 롱펠로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편지에서 단편적으로만 확인됩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Henry Wadsworth Longfellow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