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이매창
1573–1610 · 1591–1610년 · 조선 · 부안
부안, 1591년 무렵
전라도 부안의 관아에 딸린 기생 가운데 시를 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매창입니다. 아전의 딸로 태어나 기적에 올랐고, 거문고를 탔고, 글을 읽었습니다. 그때 열아홉쯤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온 손님 하나가 부안에 들렀습니다. 유희경이라는 시인이었습니다. 천민으로 태어나 시로 이름을 얻은 사람이었고, 나이는 이매창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 대해 남은 것은 유희경이 쓴 시 몇 편입니다. 그는 부안에 계랑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이매창 쪽에서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듬해 전쟁이 났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유희경은 의병을 모아 나섰고 그대로 서울 쪽에 붙들렸습니다. 이매창은 부안에 남았습니다. 기적에 오른 사람은 고을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십오 년 넘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갈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한쪽은 서울의 문인이었고 한쪽은 지방 관아의 기생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이매창이 남긴 시조가 지금도 전합니다. 배꽃 비 흩날릴 때 울며 잡고 헤어진 사람을, 낙엽 지는 가을에 저쪽도 자기를 생각하고 있을지 묻는 노래입니다. 묻기만 하고 답은 적지 않았습니다.
1607년, 다시
십오 년쯤 지나 유희경이 다시 부안에 왔습니다.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이매창은 서른다섯쯤이었고 유희경은 예순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남긴 시에 다시 만난 기쁨과 다시 헤어지는 일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이매창이 그 만남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남은 것은 다시 혼자가 된 자리에서 쓴 시들입니다. 병이 들었고, 거문고를 안고 지냈다고 전합니다.
1610년 이매창은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덤에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부안에 전해 옵니다.
외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매창이 죽은 뒤, 그의 시를 외우고 있던 부안의 아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억을 모아 1668년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새겼습니다. 죽은 지 쉰여덟 해 만이었습니다.
유희경은 그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이매창이 떠난 뒤로 스물여섯 해를 더 살고 아흔둘에 죽었습니다. 남은 쪽이 반드시 기다린 쪽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떠난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부안에 남았다.
- —십오 년 동안 그 마음을 시로만 적어 두었다.
- —재회한 뒤에도 붙잡지 않았다.
이매창은 1610년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는 1668년 부안 개암사에서 『매창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이매창이 재회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무렵의 시들이 있을 뿐입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이매창은 1573년 부안에서 태어나 161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 확인됨유희경은 1545년생으로 이매창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고,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591년 무렵으로 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 확인됨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은 오래 만나지 못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 확인됨이매창의 시는 부안 아전들이 외우고 있던 것을 모아 1668년 개암사에서 『매창집』으로 간행되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 해석두 사람이 1607년 무렵 다시 만났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두 사람이 서로를 어떤 관계로 여겼는지는 이매창 쪽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미상재회가 정확히 언제였고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 미상무덤에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는 이야기는 부안에 전해 오는 것이며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매창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