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나혜석

1896–1948 · 1930–1934년 · 조선 · 경성

조선에서 처음 서양화를 배운 여자

조선에서 서양화를 처음 공부한 여성으로 알려진 사람이 나혜석입니다. 도쿄에서 미술을 배웠고, 글도 썼습니다. 스물두 살에 발표한 소설 「경희」는 여자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1920년 그는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하면서 조건을 걸었다고 전합니다. 평생 지금처럼 사랑할 것,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 시어머니와 따로 살 것.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습니다. 자신의 첫사랑이 묻힌 무덤에 비석을 세워 줄 것이었습니다.

김우영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결혼 뒤 두 사람은 실제로 그 무덤에 다녀왔다고 전합니다.

1921년 그는 경성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조선에서 여성이 연 첫 서양화 개인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림을 계속 그렸습니다.

1927년, 세계 일주

1927년부터 이 년 가까이 부부는 유럽과 미국을 다녔습니다. 김우영이 법을 공부하러 가는 길에 함께 간 것입니다. 그 시절 조선 사람이 그렇게 다니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나혜석은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최린과 가까워졌습니다. 천도교의 지도자였고 조선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귀국한 뒤 그 일이 알려졌습니다. 1930년 두 사람은 이혼했습니다. 아이들은 남편 쪽에 남았고, 나혜석은 이후 자녀를 만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1934년, 그는 글을 실었습니다

이혼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나혜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실었습니다. 결혼 생활이 어떠했는지, 왜 이혼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를 적었습니다. 남편의 이름도 상대의 이름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조라는 관념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같은 행동을 두고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조선 남자들은 아내에게 정조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지키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같은 해 그는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도 냈습니다. 관계의 책임을 자신에게만 묻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여론은 그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반응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가혹했습니다. 여론은 그를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잡지들은 그를 조롱하는 글을 실었고,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화가로서의 활동도, 글을 실을 지면도 줄어들었습니다. 1935년에 연 전시는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친정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곳을 떠돌았습니다. 절에 머물기도 했고, 아는 사람의 집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손이 떨려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졌습니다.

1948년, 그는 서울의 한 시립 시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원을 확인해 줄 사람이 곁에 없어 무연고자로 처리되었습니다. 쉰둘이었습니다.

그가 쓴 글은 남았습니다. 지금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읽힙니다. 그 글이 쓰인 지 팔십 년이 넘어서야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이혼 뒤 침묵하지 않고 그 경위를 잡지에 공개했다.
  • —정조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 —상대 남성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 —여론이 등을 돌린 뒤에도 자신이 쓴 글을 거두지 않았다.

여론과 주변의 반응은 그에게 불리했고, 활동할 자리와 가족 관계를 잃었습니다. 1948년 서울의 한 시립 시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오늘날 한국 여성사와 근대문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다루어집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나혜석은 1920년 김우영과 결혼했고 1930년 이혼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나혜석)
  • 확인됨1934년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장」을 발표해 결혼과 이혼의 경위, 정조 관념에 대한 비판을 실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나혜석)
  • 확인됨같은 시기 그는 최린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나혜석)
  • 확인됨발표 이후 그는 활동 기반과 가족 관계를 잃었고, 1948년 무연고 상태로 사망했습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나혜석)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파리에서 있었던 일의 구체적인 경위는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 미상그가 글을 발표하기로 결심한 시점과 계기는 자세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미상말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드물어, 알려진 내용이 자료마다 다릅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나혜석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