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표트르 차이콥스키
1840–1893 · 1877–1890년 · 러시아
1877년
나데즈다 폰 메크는 철도 사업으로 큰 재산을 이룬 집안의 미망인이었습니다. 열한 명의 아이를 두었고, 남편이 죽은 뒤 사업을 직접 건사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아는 연주자를 통해 곡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곧 해마다 일정한 금액을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그 돈으로 차이콥스키는 음악원 일을 그만두고 작곡에만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건을 제안한 쪽은 폰 메크였습니다.
만나지 않는 사이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십삼 년 동안 천이백 통이 넘게 오갔습니다. 어떤 해에는 사흘에 한 번꼴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해 썼고, 읽은 책에 대해 썼고, 잠을 못 잔 밤에 대해 썼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자기 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에게 설명했습니다. 교향곡 한 편을 그에게 헌정하면서 「나의 가장 좋은 벗에게」라고 적었습니다. 이름은 적지 않았습니다.
폰 메크는 그가 머무는 곳 근처에 집을 얻기도 했습니다. 같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말을 걸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만나지 않기로 한 관계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는 편지 안에서만 존재했습니다. 밖에서는 후원자와 작곡가였습니다.
1890년, 편지가 멈췄습니다
그해 가을 폰 메크가 후원을 끝냈습니다.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편지도 함께 멈췄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돈 때문에 상처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황제가 주는 연금을 받고 있었고 곡으로 버는 수입도 있었습니다. 그를 흔든 것은 편지가 끊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답을 보냈습니다. 돈은 이제 필요하지 않으니 편지만은 계속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이유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만나지 않기로 한 사이였으므로 찾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십삼 년 동안 사흘에 한 번씩 편지를 쓰던 사람에게, 물어볼 방법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 뒤 삼 년
차이콥스키는 그 일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언급했습니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견디기 어렵다고 썼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189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폰 메크는 그 두 달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폰 메크가 정말 재정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의가 갈립니다. 아들의 사업 실패, 집안의 압박, 본인의 병 — 여러 설명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남은 것은 천이백 통의 편지와, 답이 오지 않은 마지막 몇 통뿐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십삼 년을 편지로 이어갔다.
- —연락이 끊긴 뒤 이유를 다시 물으려 했다.
- —회복되지 않은 채로 그 일을 여러 해 동안 언급했다.
차이콥스키는 189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폰 메크는 그 두 달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끝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관계가 왜 끝났는지는 지금도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천이백 통의 편지뿐입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나데즈다 폰 메크는 1877년부터 차이콥스키를 후원했고,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 확인됨두 사람은 십삼 년 동안 천이백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 확인됨1890년 폰 메크는 재정을 이유로 후원을 끝냈고 편지도 함께 끊겼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 확인됨차이콥스키는 1893년, 폰 메크는 그 두 달 뒤에 사망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 해석차이콥스키가 후원보다 편지의 단절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폰 메크가 연락을 끊은 진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재정 외에 집안의 사정과 본인의 병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 미상두 사람이 서로를 어떤 관계로 여겼는지는 편지 밖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미상차이콥스키가 보낸 마지막 문의가 폰 메크에게 전달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Pyotr Ilyich Tchaikovsky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