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진행 중

이 이야기의 사실관계는 전기와 연구 자료로 확인했지만, 1차 사료 대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래 출처를 함께 확인해 주세요.

기록에서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 1891–1900년 · 런던 · 레딩 · 파리

가장 잘나가던 때

당시 런던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가 와일드였습니다. 서른일곱이었고, 결혼했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희곡이 동시에 여러 극장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해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났습니다. 스물한 살의 옥스퍼드 학생이었고, 후작의 아들이었습니다. 열여섯 살 아래였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남성 사이의 관계는 범죄였습니다. 몇 해 전 만들어진 법 조항 하나가 그것을 이 년 이하의 중노동으로 처벌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이 이야기의 배경 전부를 결정합니다.

아버지가 개입했습니다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이 관계를 알고 아들에게 관계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사이가 나빴습니다.

1895년 2월, 후작은 와일드가 자주 가는 클럽에 카드를 한 장 남겼습니다. 거기에 와일드를 모욕하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철자까지 틀린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와일드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더글러스가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전합니다. 아버지를 무너뜨릴 기회로 본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말렸습니다. 이기더라도 잃을 것이 더 크다는 이유였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퀸즈베리 측은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되었고, 그럴 증거를 모아 왔습니다. 고소는 취하되었고, 그 자리에서 나온 증거로 이번에는 와일드가 기소되었습니다.

도망갈 시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배편을 준비했고 프랑스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호텔 방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895년 5월

와일드는 유죄를 선고받고 이 년의 중노동형을 살았습니다. 판사는 이런 사건에 내릴 수 있는 최고형이 너무 가볍다고 말했습니다.

파산했습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아이들의 장난감까지 팔렸습니다. 작품은 무대에서 내려갔고 그의 이름은 포스터에서 지워졌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며 성을 바꿨습니다. 그는 두 아들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감옥에서 그는 더글러스에게 아주 긴 편지를 썼습니다. 나중에 『심연으로부터』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글입니다. 오만 자가 넘습니다.

그 편지에는 원망이 길게 적혀 있습니다. 네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네가 나의 일과 시간을 다 가져갔다고 씁니다. 그런데 같은 종이의 다른 대목에서 그는 그 사람을 놓지 못합니다. 편지는 부치지 못했고, 출옥할 때 들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출옥한 뒤 와일드는 영국을 떠났습니다. 다른 이름을 쓰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리고 더글러스를 다시 만났습니다. 몇 달 만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조건으로 주던 생활비를 끊었고, 친구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두 사람은 나폴리에서 몇 달을 함께 지내다 양쪽 집안의 압박으로 갈라섰습니다.

와일드는 1900년 파리의 값싼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여섯이었습니다. 장례에 온 사람은 적었습니다.

그를 처벌한 법 조항이 폐지된 것은 1967년의 일입니다. 그가 죽은 지 육십칠 년 뒤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그를 포함해 그 법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사면한 것은 2017년입니다.

그는 무엇을 했나

  • —주변의 만류에도 상대의 아버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 —재판이 불리해진 뒤에도 영국을 떠나지 않고 남았다.
  • —감옥에서 상대에게 긴 편지를 썼다.
  • —출옥 뒤 남은 지원을 잃을 것을 알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와일드는 이 년의 형을 살고 파산했으며,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1900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는 그가 죽은 뒤 부분적으로 공개되었고, 전문이 나온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기록이 말해주는 것

  • 확인됨와일드는 1891년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만났고,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과의 갈등이 이어졌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 확인됨1895년 와일드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이 취하된 뒤 그가 기소되어 이 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 확인됨수감 중 더글러스에게 쓴 긴 편지가 훗날 『De Profundis』로 알려졌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 확인됨출옥 후 와일드는 영국을 떠났고 1900년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 확인됨와일드가 처벌받은 근거가 된 법률은 1967년에 개정되었습니다.(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기록이 말하지 않는 것

  • 미상더글러스가 소송을 어느 정도로 종용했는지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립니다.
  • 미상와일드가 재판이 불리해진 뒤에도 영국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 미상『De Profundis』는 감옥에서 쓰인 글로, 그 시점의 감정을 어디까지 그대로 옮긴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기록이 없는 부분은 채우지 않습니다. 인용이나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이 사람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쓰지 않습니다.

출처

  • 2차 · Encyclopædia Britannica — Oscar Wilde · 전기적 사실 확인에만 사용했습니다.